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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전문변호사 의·정갈등 시기 대형병원 암 수술 건수 최대 32% 감소···“전공의 의존 구조 드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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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민종 작성일26-03-20 09:57 조회7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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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전문변호사 전공의 집단 사직 사태가 있던 2024년 의·정갈등 시기에 국내 대형병원의 암 수술이 큰 폭으로 감소했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일부 환자가 일반병원으로 이동하는 ‘풍선효과’가 나타났지만, 감소분을 충분히 메우지는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려대 보건대학원·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연구팀(손찬석 외)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공개 데이터 플랫폼의 청구 자료를 활용해 2019년 1월부터 2024년 12월까지 월별 암 수술 현황을 분석한 결과를 최근 국제학술지 ‘JAMA Network Open’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전공의 집단 사직이 본격화된 2024년 3월을 기준으로 이전(2019년 1월~2024년 2월)과 이후(2024년 3월~12월)를 나눠 수술 건수를 비교했다. 분석 대상은 대장암, 위암, 간암, 폐암, 유방암, 갑상선암 등 주요 6대 암 수술 65만2681건이다.
분석 결과 전공의 사직 이후 상급종합병원에서는 간암을 제외한 모든 암 수술이 감소했다. 대장암 수술은 22%, 위암은 23%, 폐암은 32%, 유방암은 20%, 갑상선암은 32% 줄었다. 간암 수술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는데, 연구팀은 고난도 수술 특성상 환자가 다른 의료기관으로 이동하기 어려운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했다.
같은 기간 일반 종합병원에서는 위암(33%), 폐암(32%), 유방암(42%) 수술이 증가했다. 상급종합병원에서 줄어든 수술 수요 일부가 이동한 ‘풍선효과’로 보인다. 연구팀은 일반병원에서 상급 종합병원 수술 감소분의 일부만 흡수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상급종합병원에서 갑상선암 수술 건수가 유의미하게 감소했지만 일반병원에서는 이에 상응하는 증가가 나타나지 않았다”며 “환자들이 다른 의료기관으로 이동하기보다는 수술이 지연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이어 “이러한 결과는 필수 의료 제공이 전공의에 크게 의존하는 한국 의료체계의 구조적 특징을 보여준다”며 “의료 인력 위기 상황에서도 서비스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는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고 했다.
미국과 일본 정부가 19일(현지시간) 소형모듈원자로(SMR) 건설 등이 포함된 일본의 대미 투자 2차 프로젝트를 발표했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날 미일 정상회담 후 공개된 이 프로젝트는 총 739억달러(약 108조원) 규모다. 지난달 발표된 1차 프로젝트 규모(360억달러·약 53조원)의 두 배를 넘는 수준이다.
2차 프로젝트에는 소형모듈원자로와 천연가스 발전시설 건설 등 3개 사업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이날 정상회담 후 취재진에 이번 투자가 “첨단 SMR의 미국 내 획기적인 상업화는 차세대 대규모 안정 전원을 제공하고 미국 국민의 전력 가격을 안정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미·일 관세 합의에 따른 일본의 대미투자 일환이다. 일본은 지난해 미국과 무역 합의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부과한 관세를 일부 낮추는 대신 미국에 5500억달러(약 819조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경해도, 봄은(상)]에서 이어집니다
“공청회 자체를 못 하게 해야 하는데 여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맞다아아아!” “완전 무효다아아악!”
고성과 욕설, 찢어지는 목소리가 강당을 쾅쾅 울렸다. ‘제주평화인권헌장안’ 도민공청회가 열린 2024년 9월9일 제주장애인총연합회 회관 2층 대회의실. 100여명의 기독교·보수단체 회원들이 공청회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몰려와 강당을 점거했다. 회원들은 테이블에 올릴 발표자 명패를 빼앗고, 마이크를 가로채고, 화난 얼굴로 연단 앞을 돌아다녔다. 단체 대표자들이 공무원들에게 삿대질하며 호통치는 동안 군중은 구호를 외쳤다. 폐기하라! 폐기하라! 소수자를 헐뜯는 거친 말들이 허공을 날아다녔다.
“4·3도 재평가를 해야 해요! 안타깝지만 동전의 양면이 있어요.”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 남자가 소리쳤다. “일반인들은 인권이니 평화니 하면 좋은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공부를 해서 알아요. 그건 좌파들의 선전선동용 단어라고!” 와아아아 하는 함성이 따라붙었다.
회원들은 ‘완전 무효 가짜평화인권헌장’이나 ‘강력 반대 제주평화인권헌장’ 같은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펼쳐 들고 구호를 외쳤다. 폐기하라! 폐기하라! 단상을 점거한 이들이 진행자들을 구석으로 몰아붙였다. 처음 겪는 일에 공무원들은 충격을 받았다. 폐기하라! 폐기하라! 과격한 소란에 비교적 익숙했던 시민단체 관계자들도 점점 부아가 끓었다. 어디에서 왔는지도 모를 사람들이, ‘인권’과 ‘평화’라는 단어를 공격하기 위해 제주 한복판에서 4·3을 입에 올리고 있었다.
어깨를 꿈틀거리는 사람들을 강호진이 진정시키려 다녔다. ‘평화인권헌장’을 만드는 자리에서 물리적 충돌이 일어나면 불필요한 프레임에 휘말리게 되니, 몸싸움은 절대 하지 말자는 방침을 세웠던 터였다. 4·3기념사업위원회 등 시민운동을 오래 하며 제주 보수단체들과도 많이 마주친 강호진은 공청회를 가득 메운 소음 속에서 낯섦을 느꼈다. 늘 보던 얼굴들이 아니었고, 익숙한 말씨가 아니었다. 한두 다리 건너면 웬만해선 아는 게 제주였다. 많은 이들이 원정투쟁을 나온 사람들이라는 느낌을 그는 받았다.
다음날 서귀포시청에서 열린 2차 공청회에도 그들은 찾아왔다. 전날보다 기세가 오른 그들은 손팻말을 들고 악을 쓰며 소리쳤다. 원천 무효! 폐기하라! 행사가 파행된 뒤에도 그들은 남아서 집회 아닌 집회를 이어갔다. “소수자의 삶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다수의 인권이 역차별받는 부작용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개인, 가정, 사회, 국가의 질서가 흔들리게 될 것이다!”
백래시가 시내를 활보하기 시작했다. 전국구 보수 기독교 단체인 ‘거룩한방파제’를 비롯한 육지의 보수단체 회원들이 제주로 원정을 왔다. 4·3을 ‘공산폭동’이라고 비난했던 극우 인사들도 눈에 띄었다. ‘동성애 반대’를 내걸고 소리치며 그들은 제주도청 앞에서 기자회견과 집회와 행진을 계속 열었다. 헌장의 실체를 알리는 국토순례를 한다며 단체복을 맞춰 입고 한라산을 올랐다.
정제되지 않은 혐오 발언이 마이크를 거쳐 증폭됐다. 제주도청에는 업무를 마비시킬 정도의 ‘민원 폭탄’이 쏟아졌다. 육지의 많은 인권 보장 제도를 무너뜨린 백래시가 제주에서도 반복됐다.
◆ ◆ ◆
예정된 선포일을 5일 앞둔 2024년 12월5일, 제정위원회는 격론 끝에 추가 의견수렴을 결정했다. 제정위 운영위원장 고현수와 제주도청 관계자들이 반대 단체들을 만나러 다녔다. 의견을 더 받고, 방송 토론회도 열기로 했다. 해가 넘어간 2025년 1월24일 제주MBC에서 헌장을 둘러싼 2:2 찬반토론이 방송됐다.
반대 측은 서울을 중심으로 차별금지법 반대 운동을 펼치는 변호사를 패널로 세웠다. 그 변호사는 성소수자의 존재를 반대할 권리를 막지 말라고 말했다.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그들은 그렇게 해석했다. 집회에서 나오는 말과 같았다. ‘홍보가 부족해 도민들이 잘 모른다’는 이야기도 반대 근거로 나왔다. 도민참여단 활동과 두 차례의 공청회, 공개적인 의견서 수렴까지 진행된 상황에서 주장하기엔 빈약한 논리였다.
방송이 나간 뒤에도 제정위원회와 제주도청은 반대 단체들을 계속 만나 대화했다. ‘무조건 폐기’를 요구하던 단체들 가운데 한 곳이 수위를 낮춰 ‘일부 문구 삭제’ 의견을 내기도 했지만, 백래시는 가라앉지 않았다. 2025년 4월23일, 제정위원회와 제주도청은 회의를 열어 조문을 최종 점검하고, 온·오프라인으로 접수된 의견 2000여건과 쟁점들을 논의했다. 긴 회의를 거쳐 제주인권위원회에 넘길 헌장안을 의결했다.
제주인권위원회 최종 의결과 도지사 승인만 남았다. 하지만 한 번 멈춘 절차는 좀처럼 다시 움직이지 않았다. 그동안에도 반대 단체들은 서울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주의 대형교회에 모여 세미나를 개최했다. 2025년 여름은 유난히 길고 더웠다. 헌장 제정을 추진한 이들에게는 답답한 여름이었다.
8월 중순의 늦은 장마가 지나갔다. 공청회 파행도 1년이 다 돼 가고 있었다. 제정위원들은 초조했다. 9월 말이면 헌장안을 최종 의결할 제4기 제주인권위원회 임기가 끝난다. 인권위가 새로 구성되면 지금까지 진행한 논의도 동력을 잃을 가능성이 컸다. 새 인권위가 헌장 제정을 이어간다 해도 금방 지방선거 국면이 된다.
8월 말, 분위기가 달라졌다. 제주연구원이 도민 101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도정 성과 도민 인식조사’에서 도민 65.2%가 헌장안에 찬성한다고 응답했다. 반대한다는 응답(17.1%)을 크게 앞지른 그 숫자의 의미는 분명했다. 큰 목소리로 공론장을 뒤덮었던 보수·극우단체들의 반대 여론이 과다대표됐다는 증거였다.
헌장 제정을 촉구하는 제주 시민단체와 진보정당의 성명도 쏟아져나왔다. 반대 측의 집회가 주로 보도되던 미디어에 찬성 측의 목소리가 실리기 시작했다. 제정위원회 운영위원장이자 도 인권위원장이었던 고현수는 제주도청에 요청했다. 임기가 끝나기 전에 인권위 회의를 열어 달라. 인권위 임기가 끝나면 이것도 물 건너간다. 도민들과 한 약속을 지키자….
헌장 제정 촉구 시위와 헌장 폐기 촉구 집회가 제주도청 앞에서 연달아 열린 9월 16일, 도 인권위원회는 임기 종료 직전 가까스로 회의를 열어 제정위원회가 보낸 헌장안을 논의했다. 일부 인권위원은 헌장안 제2조의 ‘성별 정체성’과 ‘성적 지향’이라는 단어에 우려를 보였다. 3시간이 넘는 격론 끝에 국가인권위원회법이 명시한 차별 사유인 ‘성적 지향’만 남기고, 그 결정을 부대의견으로 달아 도지사에게 올리는 방안이 8대 2로 통과됐다.
제주도청의 의견수렴도 12월2일 도지사-보수단체 간담회를 끝으로 마무리됐다. ‘세계인권헌장이나 국가인권위원회법에도 있는 내용은 도민들도 수용할 수 있을 테니, 최대한 헌장 제정을 설득한다’는 게 제주도청의 방침이었다. 절차는 늦어졌지만, 그만큼 명분도 더 단단해져 있었다. 12월 5일 점심 제주 시내 한 한정식집에 제정위원들이 모였다. 고생한 이들을 격려하기 위해 도지사 오영훈이 마련한 자리였다.
“지사님. 제가 사리 하나는 나왔을 것 같습니다. 인고의 시간이었습니다.” 제주도청 앞 거리에 실명 비난 현수막까지 걸렸던 고현수가 농담으로 분위기를 풀었다. “하하, 천주교 아니우꽈?” 사람들이 웃음지었다. 같은 날 제주도청은 홈페이지에 공지를 올렸다. 5일 뒤인 2025년 12월 10일, 유엔 세계인권선언 채택일을 기념하는 제77주년 세계인권의날에, 4·3평화공원 평화교육센터에서, 제주평화인권헌장 선포식을 열겠다고 제주도청은 발표했다.
◆ ◆ ◆
12월의 제주 날씨는 대체로 험하다. 드물게 맑은 날씨가 찾아온 12월 10일 오전 9시쯤 신강협은 헌장 선포식이 열릴 4·3평화공원 평화교육센터에 도착했다. 보수단체 회원들은 새벽부터 도착해 진을 치고 있었다. 질서 유지를 위해 배치된 경찰과 공무원, 제주 시민단체 회원들과 각계 인사들, 방송국 카메라, 보수단체 회원들이 센터 정문 앞에서 뒤섞였다.
“몇 시간째 기다리는데 이게 인권이냐!” “전국에서 온 거예요, 전국에서!” 정문 개방 전부터 보수단체 회원들은 경찰의 질서유지선에 몰려들어 항의했다. 앰프를 찢을 듯한 고성이 터졌다. “제주도를 공산당, 그들의 나라로 만드는 개악을 당신들이 이렇게 한 거야! 공부하라고 공부!” 인파의 머리 위로 극우 유튜버들의 휴대전화가 솟았다. 정문이 열리고 우르르 입장한 보수단체 회원 수십 명이 내빈들의 뒤쪽에 자리를 잡았다.
도지사 오영훈이 연단에 오르자 보수단체 회원들은 품에서 손팻말을 꺼내 펼치고 구호를 외쳤다. “폐기하라!” 사나운 말들이 뒤엉켜 쏟아지고 내빈들과 도민들의 표정이 굳었다. 왁자한 소란 속에서 오영훈은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제주평화인권헌장은 어떠한 폭력과 차별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도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지이자,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더욱 넓고 깊게 확장시키는 우리 모두의 약속입니다. 제주를 더 자유롭고 안전한 평화 공동체로 이끄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현무암으로 쌓아 올린 제주 전통 등대인 ‘등명대’ 모형 아홉 개가 무대에 올라왔다. 도지사와 도의회 의장, 교육감과 4·3 유족, 청년, 사회복지사, 여성, 인권단체 활동가, 이주민 등이 등명대 모형 뒤로 나란히 섰다. 헌장 초안을 만든 100명의 도민참여단 중 1명인 문채수연도 무대에 올랐다. 폐기하라! 폐기하라! 보수단체 회원들의 고함이 그의 귀를 쾅쾅 울렸다. 함께 존중하며 살아보자는 건데, 헌장에는 누군가를 위협하거나 죽이자는 내용도 없는데, 왜 저렇게 화를 낼까. 착잡함에 그의 마음이 눌렸다.
무대에 오른 이들은 헌장 전문(前文)을 함께 낭독했다. “우리 제주는 서로의 인권을 존중하고 어떠한 이유로도 차별받지 않으며…” 문장을 읽어 내려갈수록 문채수연의 마음이 조금씩 편안해졌다. “4·3의 민주주의와 평화, 인권의 가치가 도민의 삶에서 실현되는 평화와 인권의 섬을 만들고자…” 보수단체들의 쩌렁쩌렁한 구호는 계속 그의 귀를 때렸지만, 마음속에서는 그 소리가 점점 멀리 작아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인류 보편의 원칙과 약속을 담아 제주평화인권헌장을 제정, 선포한다.”
모형 등명대에 불빛이 들어왔다.
고현수의 눈에 눈물이 돌았다. 약속을 지켰구나, 해냈다…. 강당 뒤쪽에 서 있던 신강협도 뭉클해 눈가를 적셨다. 반대단체와 씨름하고 때로는 제주도청에도 싫은소리를 해야 했던 시간들, 제정위 실무위원회에서 몇 시간씩 이어졌던 마라톤 회의들이 스쳐 지나갔다. 제정에 힘쓴 이들이 객석에서 서로를 돌아보았다. “아이고, 고생했수다.” “고생했수다!”
선포식을 마친 오영훈과 관계자들은 헌장을 들고 행사장을 나와,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4·3희생자 위령제단으로 향했다. 4·3 영령들에게 헌장을 봉헌하기 위해서였다. 보수단체 회원들이 따라붙어 비난을 퍼부었다. 살벌한 고성과 욕설에 놀란 4·3희생자유족회 어르신들이 나와 눈물로 빌었다. 소리 지르지 말아 주세요, 여기는 제단입니다, 영령들이 잠들어 있습니다…. 고함은 잦아들지 않았다.
소란 속에서도 하늘은 포근하게 오후 햇볕을 내렸다. “김 국장은 택일을 잘했네요. 12월에 이렇게 따뜻한 날씨가 별로 없는데.” 제단으로 가는 길 위에서 오영훈은 함께 걷던 특별자치행정국장 김인영에게 말했다. 일행은 위패봉안실로 들어갔다. 내벽을 따라 빙 둘러 놓인 4·3 희생자 1만5000명의 위패가 그들을 감싸 안았다. 피바람에 죽어간 이들의 이름 앞에 후손들은 평화인권헌장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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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서류와 회의와 커피의 시간이다. 제주도청 공무원들은 언제나처럼 출근했다. 익숙한 책상과 몸에 익은 의자에 앉은 그들의 앞에 새로운 과제가 놓여 있었다. 홍보와 확산, 향후 추진 계획. 제주도청은 헌장 내용을 자세히 알리는 해설서를 만들어 교육헌장 등에 배포하기로 했다. 헌장의 정신을 정책에 담을 구체적인 방법을 찾기 위해 연구용역을 맡겼다.
시민사회에서도 여러 아이디어가 나왔다. 2005년 제주가 ‘평화의 섬’으로 지정된 뒤 20년 만에 나온, 평화·인권의 가치에 관한 첫 공적 선언이었다. 제주를 중심으로 부산과 광주, 서울, 더 나아가 동아시아를 잇는 ‘국제인권벨트’를 만들자는 비전이 제시됐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떻게 어려움을 극복했는지 알려달라는 전국 인권 전문가들의 연락이 몰려들었다. ‘이제 시작이다.’ 공무원들과 시민사회 인사들은 몸을 풀었다.
‘이제 시작’이라는 말은, 어쩌면 조금 늦은 알아차림이었을지 모른다. 헌장을 선포하기 전부터 변화는 이미 시작돼 있었다. 도민참여단 회의에서 어른들과 신나게 이야기하며 헌장을 함께 만든 시간은 고등학생 고채운을 바꿔 놓았다. 환경 문제에도 관심이 싹텄지만 가장 크게 남은 건 4·3이었다. 제주 출신이었지만 4·3을 자세히는 알지 못했던 그는 도민참여단 활동으로 4·3을 새롭게 만났다.
달력이 2025년으로 넘어가고 2학년이 된 고채운은 학교 연극부에서 4·3을 주제로 연극을 만들기로 했다. 책과 인터넷으로 4·3을 공부했다. 4·3 피해자와 통화를 하고, 역사 선생님을 찾아가 물었다. 부모님이 태어나기도 전의 일을 되짚으며 대사를 쓰고 장면을 그렸다. 할머니가 4·3사건의 피해자라는 걸 모르는 중학생이 1948년 4월로 시간여행을 해 그 일을 겪는다는 줄거리였다. 고채운은 할머니 역할로 연기도 했다.
몇 주 내내 내리던 비가 그쳤다. 온화한 늦봄 하늘이 섬을 느긋하게 덮은 2025년 5월의 어느 오후, 제주 시내 한 극장에서는 청소년 연극제 무대의 막이 올랐다. 할머니로 분한 고채운이 무대에 섰다. 핀 라이트 아래에서 그와 친구들은 77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랐다.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며 사람들의 가슴에 뚜렷하게 새겨진 이야기가 있었다. 봄이 가장 먼저 오는 섬에서, 평화와 생명과 사람다움을 간절히 바라며 죽어간 이들의 소망이 어린 배우들의 목소리로 되살아났다. 어느새 쑥 자란 아이들이 무대 위에서 소리치고, 울고 웃으며, 겪지 못한 과거를 위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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